2018. 8. 19. 22:43

1.


  후후후. 그동안 정말로 고생도 많았지. 팔짱을 끼고 벽에 좀 더 깊이 기대며 그동안의 고생들을 떠올려봤다. 나같이 꼭 필요한 미끼… 아니, 인재도 제대로 판단을 못 하고 실수 좀 했다고 내쫓는 그런 녀석들 사이에서 눈치 보는 건 이제 끝이야! 아멜 녀석이 또 때리는 건 아닌지 짜증 내는 건 아닌지 신경 쓸 필요도 없어! 나한테도 파트너가-정말로 날 위해주는-파트너가 생겼으니까!


  “오래 기다렸어?”


  기척도 못 느끼고 있었는데 옆에서 불쑥 고개를 내밀면서 말을 걸어와 순간 놀라 뒷걸음질을 쳐버렸다. 깜짝… 놀랐네. 그런 내 모습에 니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금방 웃었다.


  “아니. 아니 아니. 나도 방금 왔어.”

  “그래?”


  니나는 내 손을 붑잡아 이끌며 말했다.


  “그럼 들어가자. 여기 커피가 맛이 좋다고 하더라고.”

 


***

 


  “마리아는 캐러멜 마키아토 맞지?"


  먼저 앉아서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 니나가 커피를 받아 온 모양이었다.


  "!"


  니나는 우선 테이블에 쟁반을 내려 두고, 커피 두잔 중 하나를 내 앞에 내려놓더니 다른 하나를 든 채로 맞은편 앉았다. 뭘 좋아하는지 기억도 해주고 내 파트너는 상냥하다니까. 맨날 벌이니 뭐니 하는 포악한 누구누구 씨랑은 달라! 필요 없어졌다고 바로 버리는 누구랑도 다르고 말이지! 좋아, 마리아. 넌 이제 다 된 거야. 이제 안정적으로 여기 있을 수 있는 거라고. 기분 좋은 생각에 슬금슬금 올라가는 입꼬리는 그대로 두고, 니나에게 받을 때부터 꽂아져 있던 얇은 빨대를 살짝 물고 조심조심 빨아들였다. , 이거 맛있다. 어제 갔던 아이스크림 집도 맛있었는데 말이야. 다시 한 번, 방금 생각보다 뜨겁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조금 대담하게 빨아보았다. ~. 달아.


  “맛있어?”

  “응! . 니나건 뭐야?”


  내 물음에 니나는 뚜껑을 열어뒀던 커피를 살짝 들면서 대답했다.


  “라떼야. 카페라떼.”

  “아! 그거 로네도 좋아하던 건데!”


  아. 그래서 뭐 어쩌려고. 그런 녀석 이제 아무래도 좋은데. 괜히 기분이 안 좋아져서 쟁반에 남아있던 빨대를 집어와 꼬깃꼬깃 접어버렸다. 정말! 정말로 그런 녀석 아무래도 좋은데 말이야. , 괜히 말 꺼내서 니나도 뭐라고 대꾸 못 하게 만들고. 이게 뭐야…….


  “로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니나가 작은 목소리로 되물어왔다. 슬쩍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표정을 살펴본다. . 니나도 이상한 표정이잖아. 기분이 안 좋은 걸까? 왠지 웃는 것 같기도 한데. 아 정말! 바보 같은 마리아!


  “그렇구나. 로네도 좋아하는구나.”

  “어……. . 좋아하더라고.”


  어쩐지 나한테 얘기하는 게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일단 앞에 있는 건 나밖에 없으니 대답하는 게 맞겠지. 웃는 걸 보니 기분이 나쁜 건 아닌 걸까. 다행이다. 왠지 눈이 마주치지 후다닥 표정이 변한 것도 같지만, 별거 아니겠지 뭐.


  “저기…. 마리아.”

  “응?”


  왠지 모르게 니나가 손가락을 꼼질꼼질 가만히 두질 못하고 있었다. 뭔가 곤란한 일이라도 있는 걸까. 주저하지 말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말이야. ...니까!


  “그… 로네는….”


  로네?


  “음…. 로네는 어… 잘 챙겨줬었어?”


  내 걱정이었던 거야? 이럴 수가. 역시 니나는 천사라니까. 어차피 다 지난 일로 니나한테 걱정 끼칠 필요도 없겠지.


  “응. 나름대로, 그때는 되게 잘 챙겨줬었어. 다른 애들이 뭐라고 할 때 감싸준 적도 많고. 그랬으니 나도 그래서 좋아했던 거고.”


  좋은 파트너였지 그때는.


  “좋아…한…. 그렇구나…….”


  표정이 안 좋네…. 내가 뭔가 실수했나.


  “선물… 음….”


  앗. 혹시 니나가 또 내 선물이라던가 고민하고 있었던 건가? 그러느라 고민하는 표정이었던 거야? 그런 거 안 챙겨줘도 되는데 말이야. 너무 받은 게 많아서 미안할 정도고. 여기서는 어른스럽게 사양하는 게 맞겠지.


  “저기 있지. 마리아는 로네랑 오래 같이 있었으니까 잘 알고 있지 않아? 혹시 로네가 선물로 받으면 좋아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응? 로네?

 




2.


  딱 어제 내가 니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 벽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빨리도 나왔네. 혼자 나오라는 건 또 뭔지. 이제 리더도 파트너도 아니면서 오라 가라야. 아직도 내가 지네 말에 설설 기는 그런 애로 보이니까 이런 식으로 불러내는 거겠지.


  “무슨 일로 불러낸 거야?”

  “오랜만에 보는 거잖아. 얼굴 좀 펴.”


  인상을 팍 쓰고 물어보는데 끝까지 생글거리는 것도 진짜 얄밉구나. 팔짱을 끼고 노려보다 계속 살살 웃는 표정에 기분이 이상해져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자, 들어가자. 여기 내가 추천하는 곳이거든.”

 


***

 


  “머리에 그거 처음 보는 거네.”


  자기 머리를 툭툭 치면서 얘기하길래 로네의 머리 위를 올려 봤다가 그제야 내 머리를 얘기하고 있는 걸 알아채고 다시 눈을 커피잔으로 돌렸다. 손으로 슬쩍 내 머리를 더듬어 보다 퍼뜩 생각이 났다.


  “아아. 이거.”


  기회다!


  “내 파...가 선물로 준 거야.”


  며칠 전이던가 니나랑 둘이 외출했을 때 선물로 받은 머리핀이다. 그러니까 말이지 로네 너랑 같이 안 있어도 충분히 잘 지내고 있다 이거야. 새로운 파트너 덕분에. 흐흥. 표정이 좀 안 좋아진 것 같은데, 쌤통이다. 내가 너 아니면 당장 굶어 죽을 것 같았지? 계획대로 안돼서 어떡하냐.


  “아 그래? 니나가?”


  이, , 로네는 내가 잘 지내고 있는 게 그렇게 기분 나빴던 건가. 이렇게까지 반응이 바로 올 줄은 몰랐는데. 표정 관리를 하고 있는 티가 팍팍 나는 저 표정은 대체 뭐냐고. 아니 뭐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군. 날 내친 걸 조금은 후회하고 있나. 후후후.


  “그래! 여기도 말이지 사실 니나가 먼저 데려와 줬었다고.”

  “니나가 말이지?”


  왜, 왜 기분 나쁘게 씨익 웃고 그런담. 니나 자랑 좀 더 하려고 했는데 한순간에 소름이 돋아 김이 팍 식어버릴 정도의 표정이었다. 영문을 모르겠네 정말. 원래 그렇게 잘 알겠는 애는 아니었지마는 말이야.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도 다 틀렸었고. 나도 모르게 어깨가 내려가 있었다. 기분이 안 좋아졌어. 여기 왜 나온 거지 정말.


  “그래서, 정말 무슨 일로 부른 건데?”

  “무슨 일은. 나도 어쩔 수 없이 팀에서 내보내긴 했지만 마리아 널 싫어한 건 아니란 거 알잖아.”

  “알기는 무슨….”


  아니란 건 잘 알고 있는데, 또 그때랑 똑같은 목소리로 기분을 풀어주니 괜시리 기분이 나쁘진 않다.


  “왜. 누가 또 나만큼 잘 알겠어. 네가 많이 노력했단 것도 알고 그동안 도움도 많이 됐었는걸.”


  흐, 흐응.


  “많이 안심했어. 니나랑, . 니나가 잘 챙겨주고 있는 모양이네.”

  “뭐 그렇지. 좋은 파트너야.”

  “응…. , 그렇지.”


  로네는 자기 컵을 만지작거리면서 조금 뜸을 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멜도 요즘도 종종 만나고 그래?”


  아멜- . 아하. 그렇구나. 아멜 얘기 캐내고 싶어서 만나자고 하고 이렇게 비위도 맞춰 주고 그런 거구나. 얼마나 바보로 본 거야 날. 입을 아예 꾹 다물어 버렸다. 아멜도 막 예쁘게 구는 건 아니지만 너한테 아멜 얘길 해줄 것 같아? 아멜 얘긴 절대 안 해줄 테니까. 어디 보자고.


  “니나가 요즘 뭐에 관심 있는지 알아?”


  응? 니나?

 




3.


  마리아 님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겠거든. 니나랑 로네가 그러니까 내 예전 파트너랑 지금 파트너가, 바로 얼마 전에 싸움도 있었던 두 사람이 어째서 한자리에 앉아서 그것도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거고, 나는 어째서 숨어서 그걸 엿듣고 있는 거야? . ! 진정하자 마리아. 차근차근 넌 생각할 수 있어. 이 상황을 파악해 낼 수 있어. 그러니까 처음이 먼저 그러니까 뭐였지. , 그래. 카페. 카페 카운터에 혼자 앉아 있었지.


  캐러멜 마키아토를 시켜서 혼자 우아하게 마시면서 잠시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고, 그때 고개를 돌리다 눈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고 생각됐다. 다시 돌아보니 니나가 카페로 들어오고 있었다. 역시 파트너. 통하는 게 있다니까.


  “니나-“


  벌떡 일어서서 소리 내 부르려다 뒤따라 들어오는 모습에 내 손으로 입을 확 막으면서 후다닥 다시 앉아버렸다. 니나가 왜 로네랑 같이 있지? 당황해 굳어있는 사이에 두 사람은 내 옆으로, 정확히는 카운터 앞으로 와버렸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일단은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거의 숨도 멈추고 최대한 몸을 움츠렸다.


  “로네도 카페라떼 맞지?”

  “어떻게 알았어?”


  곁눈질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로네가 몸을 돌려 반사적으로 테이블 위에 엎드려 버렸다.


  “아, 저기 자리 있네.”


  이렇게 시끄러운 와중에도 내 심장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릴 수 있구나. 속으로 백까지 센 후에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옆에는 없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시선을 돌리다 뒤쪽으로. 소파 위로 빼꼼 고개를 내밀어 탐색을 계속하니 꽤 멀찍이 두 사람이 자리를 잡은 게 보였다. 어쩐다. 정말로 왜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 혹시 니나 협박당하고 있는 거 아니야? 협박은 아니라도 로네가 니나를 이용하려고 하는걸 수도 있고. 안돼. 파트너로서 이대로 있을 수 없지. 우선은 두 사람을 주시하다 둘의 뒷자리가 비어있는 걸 확인하고 컵을 들고 일어났다. 슬쩍 뒤를 한번 돌아보고, 후다닥 한자리 가까이로. 다시 한 번 일어서다 고개를 돌리는 로네의 모습에 놀라 모르는 인간의 옆에 앉아버리고. 그리고 다시 한 번 움직여서야 겨우 두 사람의 뒤, 정확히는 니나의 등 뒤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 어디 들어보자고. 혹시라도 로네가 뭔가 꾸미고 있다면 이 마리아 님이 파헤쳐서 니나를 구해주겠어.


  -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당연히 두 사람의 뒤에 앉아서 내가 듣게 된 대화가 이런 것일 줄은 몰랐다.


  “어제 마리아랑 만났어.”

  “만났던 거야? 얘긴 잘 나눴어?”

  “응. 잘 챙겨주고 있는 것 같더라.”

  “그야, 소중한 파트너니까.”

  “아- 그래?”

  “앗. 혹시… 방금 말 기분 안 좋았어? 그런 뜻이 아니고….”

  “나도 알아. 니나가 그럴 뜻 없었다는 거. 그냥- , 여기 마리아랑 왔었다면서?”

  “응 많이 좋아하더라.”

  “안 그래도 자랑하더라고. 여길 소개해줬던 게 나였던 건 몰랐던 모양이지만.”


  당연히 전혀 몰랐다.


  “아, 로네가 라떼를 좋아한다는 거 마리아한테 들었어.”


  그렇지. 내가 얘기해줬지.


  “내가 몰랐던걸 마리아를 통해서 알게 된 건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로네에 대해서 더 알게 돼서 좋았어.”


  아. 틀렸다. 힘이 빠져버렸다. 모르겠다. 뭐지. 마리아 님은 모르겠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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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