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러브라이브!2016. 5. 21. 23:31

그림자에 대하여

 

노조미의 자리는 창가 바로 옆이었다. 코트를 벗어 의자에 대충 걸쳐 놓고 자리에 앉으니, 자연스럽게 정면으로 보이는 시계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여섯 시, 그리고 분침은 삐걱대며 숫자 9를 향해가고 있었다. 교실 시계가 평소 3분 정도가 빨랐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노조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무도 없을 만하네.

이유 없이 조금 일찍 눈이 떠지는 날, 어쩐지 준비도 평소보다 일찍 끝나버리는 그런 날이 있다. 바로 오늘이 노조미에게는 그렇게 하루가 조금 일찍 시작되어버린 날이었다. 준비를 마치고 현관에 서 있으니 조금 고민이 되었지만, 괜히 마음이 동해 그대로 일찍 집을 나섰다. 학교에 도착하고 보니 당연하게도 평소보다는 훨씬 이른 시각. 교실에 노조미 외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야기를 나눌 상대도 없다. 그렇게 혼자 창문 바로 옆에 앉아있자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창 너머로 향했다. 이른 시각에도 학생들은 한 명씩 띄엄띄엄 교문을 지나고 있었다. 교문 언저리에서 맴돌며 지나는 한명 한명을 세어 보더니 돌아온 시선은 그녀의 앞자리 책상을 향했다. 책상 위에 엎드리더니 슬쩍 눈동자만 시계를 올려보았다. 똑딱거리는 초침에 맞추어 손가락을 까딱이며 수를 세어본다. 하나. . . . 스물도 되지 않아 노조미는 다시 일어나며 오른손으로 턱을 괬다. 나 너무 참을성이 없는 건 아닐까. 자연스럽게 다시 창밖을 향해 돌아가는 자신의 고개에, 노조미는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혼자서 등교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지만, 두셋씩 짝을 지어 교문을 넘는 이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와중에 이쪽저쪽을 오가는 노조미의 시선은 명백히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한참을 돌아보아도 찾는 이가 보이지 않자 이내 다시 턱을 괴고 있던 팔을 내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노조미는 그대로 지나가려던 시선을 다시 돌려 자신의 오른손을 향했다. 정확히는 책상 위, 오른손의 새끼손가락 옆으로 빼꼼 고개를 내미는 것을 가만히 내려보았다. 그것은 마치 노조미의 시선을 느낀 양 살랑거리며 슬쩍 그녀의 손가락을 타고 올라왔다. 노조미는 가만히 내려보더니 그것이 손목 부근에 이르렀을 때 가볍게 두어 번 손을 털었다. 가볍게 흩어지며 날아간 그것은 형체도, 무게도, 경계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거기에 존재했다. 그것을 노조미는 그림자라 불렀다.

기억을 천천히 감아 올라간다. 뮤즈와 만난 날의 기억. 오토노키자카로 전학을 온 날의 기억.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어린 날에 내려보았던 발의 끝.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기 위해 발돋움을 했을 때. 점점 흐릿해지는 기억은 어느 순간 뚝 끊어진다. 그 끝자락에도 그림자는 노조미의 곁에 있었다. 작은 손을 쥐락펴락할 때 그 위에서 그림자는 천천히 모여들었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살짝 서늘한 기분에 노조미는 그것을 퍽 재미있다 여겼다. 어린 노조미에게 그림자는 작은 친구와 다를 바 없었다

언제부터 그것을 그림자라 불렀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그것은 그림자로서 언제나 노조미의 옆에 존재했다. 오히려 언제부터 그것이 ‘보통의 그림자’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는가를 고민해본다. 아마 무언가 잘못되었다 느끼기 시작한 것은 조금 나중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그림자를 가리키면 모두 같은 표정을 보였다. 초등학교의 담임선생님도, 부모님도, 친구들도.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의아해하던 그 표정은 이내 하나같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으응.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 표정이 두려워 노조미는 그 이상은 누구에게도 이야기해 보지 못했다. 그렇게 부정하고, 조금만 가만히 버티고 서있으면 금세 노조미를 향하던 시선을 거두어지고, 다시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림자는 그렇게 혼자 멈추어 선 노조미를 천천히 감아 올라갔다.

‘그림자가 아니라면, 그럼 이건 뭐지?

그때 노조미는 처음으로 제 팔을 기어오르는 서늘한 감각이, 그림자가 무섭다고 느꼈다.

잠시 옛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에 털어냈던 그림자가 다시 슬금슬금 노조미의 손가락 사이로 들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씩 움직이다 노조미의 시선이 향하자 뚝 멈추어 선 것이 눈치를 살피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 쿡쿡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어?"

반가운 목소리에 돌아보니 에리가 몸을 기대오고 있었다.

"에릿치! 언제 왔나?"

"방금?"

에리의 대답을 들으며 곁눈질로 돌아보았을 때 그림자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그래서-"

에리는 슬쩍 노조미의 어깨 너머로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며 물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거야?"

당연하게도 에리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동자가 이쪽저쪽을 탐색하더니 에리는 퍼뜩 무언가를 떠올렸다. 에리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노조미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혹시…. 그게 있는거야?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그녀에게 무어라 답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눈이 마주친 순간 떠오른 답은 엉뚱한 것이었다.

"아니레이. 기냥 에릿치를 처음 만났을 때 생각이 나서 말이여."

장난스럽게 웃으며 이야기했을 때, 에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예상한 대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에리를 향해 노조미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

“그럼 우선 차례대로 자기소개라도 해볼까?

최악이다. 오늘 하루만 노조미가 같은 생각을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다만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상황의 다음에는 더 최악이라고 할 만한 상황이 돌아왔다.

첫 등굣길이었다. 처음 가는 길은 아니었지만 낯설어 조금 헤매 버렸다. 덕분에 교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남은 자리는 가장 뒷자리 딱 하나뿐이었다. 남아있는 자리에 앉기 위해 조심스럽게 의자를 빼낼 때 스스로에게 쏠린 시선에 노조미는 생각했다. 최악이다. 두 번째 최악도 금방 찾아왔다. 소름 끼치게 익숙한 서늘한 감각에 노조미는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분명 한동안 근처로 다가오지 않아 안심하고 있었을 터였다. 왜 하필 오늘이지. 보지 말자. 신경 쓰지 말자. 느끼지 말자. 속으로 수없이 중얼거렸지만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리고 세 번째 최악의 상황으로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하는 자기소개가 주어졌다.

와중에 등 뒤로 느껴지는 감각은 아래쪽에서 점점 위로 올라왔다. 솜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끼며, 노조미는 더 강하게 되뇌었다. 보지 말자. 신경 쓰지 말자. 반응하지 말자. 반응하지 말자. 반응하지 말자. 혼자 다른 세계로 점점 가라앉는 듯한 느낌에는 익숙해질 수 없었다. 머리 위를 넘어 눈앞으로 그림자의 끄트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차례가 돌아와 노조미의 앞사람이 일어나고 있었다. 벌써 그렇게 된 건가. 어떡하지. 지금 혹시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노조미는 혼자 생각에 잠겨 드는 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야세 에리라고 합니다.

순간 노조미는 앞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카락 한 올 흔들리지 않아 그것이 착각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서야 노조미는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림자가 사라졌다. 처음 느껴보는 해방감이었다. 올려 본 시선 끝에 눈썹을 찌푸린 금발의 ‘아야세 에리’가 보였다. 그것이 노조미가 본 에리의 첫 모습이었다. 짧은 한마디를 끝으로 에리는 다시 자리에 앉았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던 노조미는 한 몸에 온 교실의 시선을 받아버렸다. 하지만 그 시선들 가운데 에리와 눈이 마주쳐, 그 상황은 노조미에게 최악이 될 수 없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에리는 교실에서 나가 버렸다. 내내 그녀를 신경 쓰고 있던 노조미는 당연히 에리가 문을 나서는 뒷모습 또한 보고 있었지만, 곧장 따라나서진 못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따라가야 해’가 맞았다. 하지만 바로 뒤이어 떠오른 ‘왜?’는 그녀의 발을 붙들었다. 누구의 것이었는지 모를 기억 속의 차게 가라앉은 눈도 스믈스믈 기어 나와 노조미를 붙잡았다. 그런 노조미를 움직이게 한 것은 ‘하지만’이었다.

결심하자마자 복도에 나와 좌우를 두리번거렸지만 이미 에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노조미는 먼 곳에서부터 다시 모여드는 그림자를 느꼈다. 복도에 서 있는 몇몇이 이야기하는 와중에 들린 에리의 이름에 일단 무작정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섯 걸음 정도 뒤일까. 모여든 그림자는 노조미를 따라오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진 않았다. 다만 걸음은 조금 빨라졌다. 복도의 끝자락에 와서는 이미 거의 뛰는 것에 가까웠다. 그림자와의 거리가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계단을 거의 날 것 마냥 뛰어 내려가다 우뚝 멈추었다. 노조미의 등 바로 뒤까지 뻗어 온 그림자를 똑똑히 느낄 수 있었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뛰어 내려온 보람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노조미는 에리를 붙잡을 수 있었다.

“저기!

“넌 누구야?

에리가 돌아보는 시선과 함께 노조미의 등 뒤로 몰려오던 그림자는 일순간에 흩어졌다. 다시 한 번, 이번에는 분명하게 노조미는 에리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나…”

노조미는 무언가를 기대하게 되어버렸다.

“내는 토죠 노조미!

***

 

“노조미!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에리의 표정에 무언가 진지한 이야기가 뒤따를 것이라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조금은 그녀를 경험하게 된 노조미는 달랐다.

“나, 파르페란 걸 먹어보고 싶어.

덕분에 노조미는 이어지는 이야기에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에리는 의아할 정도로 처음 해보는 일이 많았다. 그러니 이런 상황은 노조미에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해보지 못한 일들을 노조미이기에 넌지시 청해오는 것이 그녀로서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여가 괜찮다카더라.

귀갓길에는 이미 노조미가 두 사람의 목적지를 정해두었다. 의외로 이런 부분에 서툰 에리 탓에 대부분의 준비는 노조미의 몫이었다. 노조미가 핸드폰 화면을 내밀며 이야기하면, 에리는 감탄하며 그녀를 따랐다. 그런 식으로 몇 번씩이나 둘이서 처음 찾는 길을 지났다. 그 좁은 골목길도 그중 하나였다.

두 사람이 지나기에는 길이 좁아 에리가 앞서가고 노조미가 그 바로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다 노조미의 발걸음이 늦어졌다. 두 사람의 사이가 벌어지면서 노조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왜 지금’이었다. 지금까지는 에리와 함께 있으면 괜찮았을 터였다. 느려지던 걸음은 아예 멈춰버렸다.

“노조미?

돌아보는 에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노조미는 자신의 시선이 그녀를 지나쳐 그 뒤를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이 되었다. 에리의 등 뒤로 그림자가 밀려오고 있었다. 크다. 한번 옮겨간 시선은 거기에 박혀버렸다. 기분 탓이 아니라면 그림자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단지 가까워지고 있을 뿐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노조미로서는 그 둘을 구분할 수 없었다.

“왜 그래? 괜찮아?

바로 뒤. 뒷걸음질 칠 수 없었다. 에리에게 다가갈 수도 없었다. 노조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림자는 위에서부터 천천히 에리를 삼켜 들어갔다.

“괜찮은 거야?

이미 그림자가 에리의 얼굴의 반을 삼켜 노조미는 그녀의 입이 움직이는 모양만 볼 수 있었다. 에리가 무언가 말했다. 귀로 들리는 목소리와 입이 움직이는 모양, 모두 듣고 또 보고 있지만, 그 뜻이 머릿속에 들어 오지 않았다.

‘나 지금 제대로 웃고 있나?

목을 지나쳐, 가슴께, 허리, 에리의 온 몸이 그림자 안에 갇혔다. 노조미는 그 순간, 그 장소에 혼자였다.

“노조미!

그림자 안에서 뻗어 나온 손이 굳어 있던 노조미의 팔을 낚아챘다.

“듣고 있어? 나는 어두운 걸 싫어해.

에리의 손이 나온 곳을 중심으로, 그림자가 걷혔다.

“아니, 사실 무서워해. 나한텐 이게 아무한테도 얘기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말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그치만.

에리 자신도 당황해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노조미에겐 분명히 전해지고 있었다. 노조미는 제 팔의 떨림이 멎는 것으로, 스스로가 떨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림자는 모두 걷혔다. 노조미는 에리를 마주 볼 수 있었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노조미는 머지않아 그녀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자신을 상상하며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에리에게 웃어줄 수 있었다.

 

 

 

 

16.5.21. 어나더스테이지

Present by hon_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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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an_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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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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