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언라2019. 12. 17. 10:16

1.

 

저거.

 

언젠가의 그가 언제나의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당신 같아.

 

그녀가 돌아보았을 때 그는 의욕 없이 엎드린 채로 한 팔만 들어다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그의 손끝을 따라가니 한쪽 벽에 검은 거미 한 마리가 느긋하게 천장을 향해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의외의 센스가 있네, 당신. 거미는 분명 지혜로운 여성을 상징했지?

?

 

한마디에 쉽게도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모습이 그답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지혜로운 여성? , ! 그냥 먹이를 기다리면서 슬금슬금 돌아다니는 꼴이 당신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쏘아붙인 끝에 그는 습관처럼 몇 번이고 반복했던 한마디를 더했다.

 

기분 나쁜 여자.

 

내가 당신 이야기에 동의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

 

마르그리드는 듣지 못할 이에게 해야 할 이야기를 입안으로 중얼거렸다.

 

?”

아니, 이쪽 얘기야.”

 

마르그리드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눈앞에는 마치 보이지 않는 거울이라도 있는 양 똑같은 모습의 마르그리드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른 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쪽은 끝자락에 얼굴이 묻은 흰색 실험복 차림에 초조한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고 반면에 다른 한쪽은 엔지니어들의 가벼운 차림과 함께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얼굴, 체형 그리고 목소리 무엇 하나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의 상대방에게 두 사람은 서로 지독한 거부감을 느꼈다.

 

저는 아직 대답을 듣지 못한 것 같은데요. 누구, 당신?”

 

연구복 차림을 한 쪽의 마르그리드가 한 발 물러서며 경계 어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동의할게, 로쏘. 정말 기분 나쁜 여자네. 마르그리드는.’

 

한발 더 물러서더니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그녀는 한 팔을 펼쳐 들었다. 무엇인가를 보호하려는 듯 한 그녀의 몸짓에 마르그리드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너머를 향했다. 희뿌옇게 시야 밖에 있던 배경은 기계가 그 한 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천천히 올라가는 시야를 따라 점점 거대해지는 모습은 분명 마르그리드의 기억 한편에 있었다. 끊임없이 웅웅 울어대는 소리는 그 기계의 것이었다. 정체는 좀처럼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마르그리드는 자신이 저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뿐이었다. 마르그리드는 다시 시선을 자신의 앞에 선 '마르그리드'에게로 돌렸다. 잔뜩 어깨를 굳힌 그녀를 바라보며 마르그리드는 생각했다.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 몸이 굳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보이고 싶은 모양이라고. 그리곤 어깨를 으쓱거리며 가볍게 답을 주었다.

 

나는 당신이야.”

이해할 수 없어요.”

 

마르그리드의 이야기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거짓말.”

 

또다시 한 발을 물러서는 그녀에게 맞춰 마르그리드는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이미 모든 판단을 내리고 생각하고 있잖아, 당신. 혹시 다시 한 번 말해주길 바라는 거야?”

 

두 사람의 눈동자는 미동 없이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이내 마르그리드의 눈이 보기 좋게 휘었다. 가늘게 뜬 눈초리로도 마르그리드는 그녀가 살짝 뒤로 뻗은 손을 쥐락펴락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마르그리드야.”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마르그리드는 나예요. 당신이 마르그리드라고 하는 건.”

그거 자기가 하고 있는 연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발언인 거 아니야?”

그 말은.”

 

그녀가 하던 말을 멈추고 입술을 깨무니 기계소리가 더 크게 두 사람 사이를 매웠다. 다시 입을 열고도 잠시 망설이는가 싶던 그녀는 이내 쏘아붙이듯이 이야기했다.

 

아니. 아니에요. 나는, 나는 인정할 수 없어요.”

그래?”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스쳤다.

 

, 그래. 내기를 할까?”

 

나쁘지 않은 여흥이 될 것이다. 진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마르그리드를, 그녀는 불안한 듯 올려보았다.

 

 

2.

 

마르그리드가 보는 또 한 명의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연구실에서 책상에 파묻힐 것 마냥 고개를 숙이고 혼잣말을 쉼 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오늘도 역시나 평소와 다른 바 없는 그녀의 모습에 마르그리드는 눈을 흘겼다. 재미가 없네. 마르그리드는 천천히 미끄러져 그녀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어깨너머로 보이는 그녀가 몰두해있는 문서에 가득한 것은 마치 암호와 같은 수식들인데다 종이 한가득 흘겨 쓴 마르그리드의 필체로 까맣게 덥혀있었다. 하지만 종이 위의 점 하나까지도 마르그리드에게는 숨 쉬듯이 익숙한 것이었다.

 

소용돌이 관측지역과 케이오시움 농도에 대한 논문?”

 

아무런 기척도 없었을 터이지만 마르그리드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무덤덤히 그녀를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조금의 기척도 없이 나타나는 그녀로 인해 마르그리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저답지 않은 비명을 지르곤 했다. 하지만 어떤 일이라도 반복되면 덤덤해지기 마련.

 

시시하네.”

도와줄 게 아니라면 좀 사라져 주세요.”

정말로? 안심할 수 있겠어? 내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말이야.”

 

마르그리드는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대답 없이 다시 시선을 논문 쪽으로 향하려 하는 그녀에게 마르그리드는 뒤편에서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왜 그래? 오늘따라 더 까칠하네.”

 

마르그리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르그리드는 그런 그녀의 오른팔에 제 팔을 엮으며 말했다. 쥐고 있던 펜이 떨어졌다.

 

초조해?”

 

작은 목소리이었지만 그녀의 귀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소리는 마르그리드에겐 너무나 크게 들려왔다. 웃음기 가득한 그 목소리에 마르그리드는 이를 악물었다.

 

당신은 실패할 거야. 내가 거쳐 온 길인걸.”

 

기계소리가 크게 울렸다.

 

 

3.

 

늦은 시각, 긴 복도임에도 보이는 모든 방은 불이 꺼져있었다. 여느 때 같았다면 모두가 정리를 마치고 돌아간 시각이라도 마르그리드의 연구실만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오늘은 복도 어느 곳으로도 빛이 새어나오지 않았다. 의아하게 여긴 마르그리드는 복도를 가로질러 문 안으로 들어가 또 다른 마르그리드를 찾았다. 그녀는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고 손을 늘어뜨린 채 제 눈앞의 화면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언제나 화면 가득 수식과 회로를 띄우고 있던 모니터는 두 연인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녀의 뒤로 다가온 마르그리드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가만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지지직거리는 노이즈가 가득한 오래된 영화. 곧이어 화면이 바뀌었다. 그리고 화면 속의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이거.”

직접 복원했어요.”

 

분명 아무 기척도 없었을 터인데 그녀는 놀라지 않고 마르그리드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았다. 시선은 여전히 화면을 향한 채였다. 마르그리드도 화면을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 괜찮은 취향이네.”

 

마르그리드는, 마르그리드의 이야기에 그녀를 힐끔 돌아보더니 다시 모니터를 향하며 답했다.

 

, 그렇겠죠.”

그러네.”

 

배경음이 고조되며 긴장된 분위기 속에 화면에는 그 여자가 아이를 안은 채로 등장했다. 마르그리드가 가만히 화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여자, 죽을 거야.”

알아요. 이미 몇 번이나 본 영화예요.”

그래.”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거미 같은 여자라는 얘기 들어본 적 있어?”

?”

아니.”

 

 

 

 

4.

 

그 날 따라 그녀가 유독 기뻐 보였다. 그 모습에 괜히 또 기분이 나빠져 마르그리드는 퉁명스레 말을 붙였다.

 

드문 일이네.”

 

앞도 뒤도 잘린 그 한마디로 마르그리드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채곤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내일이에요. 내가 이길 거예요.”

 

마르그리드는 잠시 아무 반응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이야기 탓이 아니었다. 그녀의 처음 보는 환하게 웃는 표정이, 마르그리드에게 너무나도 낯설었다. 그렇게 웃은 적이 있었던가.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마르그리드에게 있어 몸과 함께 버린 무수한 파편들 중 하나일는지도 모른다. 마르그리드는 제 앞에 의뭉스런 표정이 떠오르고야 다시 한 번 그녀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그녀 또한 마르그리드에게 앞뒤 사정과 함께 무슨 일인지 이야기 한 것은 아니었지만 짐작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내기를 할까?

 

. 그래.”

 

동시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기억에는 없는 기억이었다. ‘이오시프였던가? , 당신 남편 말이야. 질 나쁜 남자였잖아.’ 한참 듣지 못한 남자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큰 폭발과 함께 괴물들이 연구실에 난입했다는 진술이 있었다.’ 이상하리 만치 깨끗해진 기록을 복원하자 그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조각조각 잘린 것들을 이어 붙여 그려낸 그림에 내일의 광경이 있었다. 마르그리드는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분명 방금 표정이 흐트러졌다고. 하지만 들뜬 상대는 마르그리드의 표정은 보고 있지 않았다. 어느새 이미 돌아서 들떠서는 모니터에 떠오른 언어들을 점검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야기의 결말이 눈에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다. 잠시 몸을 피한 후 모든 일이 끝난 후에 돌아와, 이 세계의 그녀를 비웃어 주면 될 일이다.

 

마르그리드도 그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고 돌아섰다. 뒤편에 자리한 요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아이를 품을 요람. 자신의 기억에 찾아낸 정보는 아니었다. 이 또한 조각을 찾고 기워 맞춰 그려낸 그림의 일부였다. 일그러진 그림의 한가운데 그 기계가 있었다. 기분이 나빠져 오는 한편으로 참을 수 없이 우스워, 마르그리드를 눈썹을 찌푸린 채 웃었다. 그 또한 우스운 모습이었다.

 

 

5.

. 안 돼. 여기까지 왔으니까.

전원 구속한다. 그대로 엎드려.

마르그리드. 시키는 대로 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자니 전부 화면 너머에서 보는 무대 같았다. 이미 대본을 넘겨다 본 그녀에게는 정말 시시한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곧이어 펼쳐지는 클라이맥스.

 

그렇군요. 당신이었군요.

 

다르다. 이상한 일이다. 희미하게 웃으며 그를 받아들이는 모습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물론 마르그리드 또한 자신이 상정했던 상황과는 조금 빗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녀의 과거 같은 것이 아니다. 마르그리드가 이때의 마르그리드와 만나게 된 시점에서 이것은 과거가 아닌 또 하나의 가능세계였다. 그것을 간과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상황은 이상하다. 마르그리드는 생각했다. 저 여자는, 마르그리드는 어리석고 또 어리석다. 그렇게나 어리석었다.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큰 흐름에 휩싸여 흘러가는 그 모습이 참을 수 없이 기분 나빴다. 선택받은 자.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것이 비꼬는 말임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마르그리드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마르그리드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마르그리드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너무 간과한 것은 아닐까? ‘마르그리드라고 하는 변수가 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컸던 것인가. 마르그리드는 생각을 계속했다. 과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마르그리드는 아무것도 몰라야 한다. 그런데 왜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

 

마르그리드는 아이를 끌어안고 몸을 말았다.

 

총성이 긴장을 끊어냈다. 무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동시에 마르그리드의 생각이 멈췄다.

 

실험실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사람으로 가득했다. 그 한가운데 마르그리드와 마르그리드 그리고 아이가 있었다. 총성은 금방 사그라졌다. 마르그리드의 눈은 가려져 있었다. 그녀의 눈을 가린 손은 마르그리드의 것이었다. 뒤에서 나타나 한 손으로 마르그리드의 눈을 가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마르그리드 품 안의 아이를 지지했다.

 

결말은 대본과 다를 것이 없었다. 심연의 생물은 모든 것을 삼켰다. 아이와 그 아버지만을 제외하고. 마르그리드와 마르그리드는 심연 속으로 떨어졌다. 마르그리드는 그 짧은 순간, 눈에 스친 벽을 기어오르는 거미를 보며 웃었다.

 

내가 이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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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람 소리도 없이 벌떡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은 다이아의 눈은 아직 감겨있었다. 더듬더듬 침대를 밀어내고 크게 기지개를 켜고 나서야 눈이 뜨였지만, 아직 비몽사몽간인 듯 시야가 흐릿했다. 와중에도 몸에 익은 대로 세안을 마치고 교복을 갖춰 입은 후에 루비를 깨우고 나서야, 바깥사람들에게 익숙한 ‘쿠로사와 다이아’의 모습이 되었다. 학교를 향하기엔 조금 이른 시각이었지만 다이아는 현관을 향했다. 그러다 복도 한쪽에서 전신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는 한 가닥 흐트러진 머리를 다듬어 핀을 다시 꼽았다. 교복 치마 주름을 가다듬고 마지막으로 타이를 바르게 매만졌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서야 현관에서 검은 구두를 가지런히 꺼내 신고 뒤를 돌아본다.

 

  “다녀오겠습니다.”

 

  다이아는 집안을 향해 인사한 뒤 문을 나섰다. 날이 많이 선선해진 것을 느끼며 그는 자연스럽게 발이 향하는 길을 걸었다.

 

 

 

  같은 시각에, 같은 복장으로, 같은 길을 나서, 같은 장소에 도착한다. 학교란 공간은 좀처럼 변화가 없는 곳이다. 우치우라 정도의 시골 마을에 우라노호시 같은 작은 학교가 되면 더더욱 그러했다.

 

  “다이아쨩!”

 

  어쩐지 간지럽게 느껴지던 호칭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적응하게 되고 이내 일상이 된다. 다이아는 길에서 기다리고 있던 치카에게 다가가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쩐 일로 일찍 나왔네요?”

  “수저 물고 조니까 미토 언니가 쫓아냈어…….”

 

  우물우물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와 함께 치카의 어깨도 작게 쪼그라드는가 싶더니 금방 다시 ‘그런 것보다!’를 외치며 살아났다. 엊저녁에 시이타케가 이유 없이 짖었던 일과 작사로 머리를 싸매다 하나씩 입에 넣은 초콜릿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열댓 개가 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치카에게 다이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다는 추임새를 넣었다. 그가 추천해준 뮤즈의 무대를 보았단 얘기에는 다이아의 목소리도 눈에 띄게 높고 빨라졌다. 이른 시각, 짧은 등굣길, 언덕을 오르는 발걸음, 조금은 싸늘하게 느껴지는 아침 공기, 그리고 옆에서 웃는 치카까지 모두 조각조각 스미어 다이아의 일상이 되었다. 이전보다 조금 덜 반가워진 교문을 마주치게 되는 것도 일상의 하나였다.

 

  “그럼 먼저 들어가세요.”

 

  다이아의 배웅 후에도 치카는 왜인지 학교로 들어가지 않고 다이아를 가만히 올려보더니 급기야는 미간이 좁아졌다. 다이아는 딱, 그 순간 때맞춰 무슨 일인지 묻기 위해 입을 열고 있었기 때문에 치카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했다. 다이아가 인식한 것은 치카가 이미 그에게서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뺨에 입을 맞춘 후에.

 

  “헤헤헷.”

 

  치카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는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이따 봐 다이아쨩!”

 

  그리곤 후다닥 교정을 가로질러 건물로 들어갔다. 문을 돌아가다 다시 빼꼼 나와서는 다이아에게 크게 한 번 더 손을 흔들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치카가 보이지 않게 되고서야 다이아는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 쥐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정말, 당신은 도무지 익숙해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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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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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브라이브!2018. 10. 21. 01:26

특별히 기대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검토를 마친 서류를 옆으로 옮기고 처리해야 할 새 서류를 끌어다 앞으로 놓는다. 턱을 괸 채 툭툭 괜히 볼펜의 뒤 축을 괴롭히다, 슬그머니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내렸다. 에리는 차분하게 자신의 추론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았다.


첫째. 오늘은 1021일이다. 둘째. 며칠 전 린이 뭔가 갖고 싶은 것이 없냐며 넌지시 물어왔다. , 뮤즈 멤버들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늘 학생회에서 만났을 때 노조미가 어딘지 어색하게 시선을 돌린 것과 묘하게 평소와 다른 톤의 목소리까지 더해보면 이것은 분명-


에리가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결론을 향해가던 와중에 핸드폰의 진동이 울려 생각의 흐름을 끊었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은 우미’. 언제나처럼 <안녕하세요, 에리.>로 시작한 한껏 격식을 차린 메시지는 한참 이어져 <그럼 이만.>으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장장 서른 줄에 걸친 메시지는 요약하자면 지금, 부실로 와주세요.’였다. 드디어-인가.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네. 가볍게 한숨을 내쉰 에리는 앞에 있던 서류를 들어다 책상에 툭툭 쳐 정리해 뒤집어 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에리는 부실의 문고리를 붙들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기를 두 번, 그렇게 호흡을 가다듬고 또 표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나서야 문고리를 돌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안에서 들려온 우당탕 뭔가 무너지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부실의 전반적인 상황으로 예상컨대, 의자와 함께 넘어져 앞으로 고꾸라진 호노카와 눈이 마주쳤다.


-헤헤헤. 생일 축하해, 에리쨩.”


잠시의 정적은 머쓱하게 내뱉은 호노카의 목소리가 깨뜨렸다.


--!”


바로 잔소리를 시작하려는 기세로 달려드는 우미와 그런 우미를 말리는 코토리의 모습에 그제야 에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부실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직접 써서 붙인 것이 분명한 ‘happy birthday!’는 두세 명이 함께 준비한 것인지 글자마다 꾸민 모양이 달랐다. 테이프가 단단히 붙질 않아 바닥에 떨어진 풍선을 보아하니 급하게 준비한 티가 역력했다. 수업이 모두 끝난 후부터 에리가 일을 마치고 돌아가기 전까지 준비를 마쳐야했으니 시간이 꽤 빠듯했던 셈이었다.


이제 노래할까?”


에리를 중심으로 전원이 둘러 모이니, 코토리가 구석에서 케이크를 꺼내오며 이야기 했다. 진한 초코 케이크의 자태에 맛을 상상하며 에리의 입에서 언제나의 감탄사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하라쇼!”


케이크에 시선이 집중되어 살짝 숙였던 고개를 들다보니 코토리의 등 너머로 부실 창문에 비친 그림자가 보였다. 에리는 인영으로 보이는 실루엣만으로도 바로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림자는 금방 모습을 감췄다.


잠시만.”


에리는 곧장 코토리의 옆으로 돌아 나와 모두를 부실에 남겨두고 혼자 빠져나왔다. 부실을 나서자마자 그림자의 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돌 연구부의 팻말이 적힌 문, 그 바로 옆의 벽에 팔짱을 낀 채로 기대있는 모습은 에리에겐 너무나도 낯익은 얼굴이었지만 동시에 어딘지 낯설었다. 저런 표정을 짓고 있었구나. 상대방은 그녀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감상에 젖어 있는 것이 썩 맘에 들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먼저 입을 열며 뱉은 목소리는 상당히 퉁명스러웠다.


시끌벅적하네.”

그래도 좋아하잖아, 저런거.”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에리는 팔짱을 풀었다.


저게 정답이야?”


몸을 틀어 마주보며 물어오는 그녀의 표정 찌푸려져 있었다. 그 모습에 에리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저런 표정이었구나.


괜찮아. 그리고-”


가볍게 그녀의 미간사이를 누르며 말을 이었다.


생일축하해.”


뒤에서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손길에 에리가 돌아보니 발레복 차림의 어린 아이가 자신을 올려보고 있었다. 에리는 쪼그려 앉으며 그녀와 눈을 맞췄다.


지금 행복해?”

.”


에리는 아이의 질문에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그리고 아이는 그런 에리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이야기했다.


생일축하해!”


부실에서 들리는 웅성거리는 소리에 에리가 두사람을 문 밖에 남겨두고 다시 부실로 들어서는 순간 펑 폭죽 소리가, 그리고 바로 이어 호노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못 터뜨려서...”


호노카도 참. 웃으며 다시 모두의 사이로 들어가니 진동소리가 들렸다. 책상 위에 있는건가. 소리가 꽤 크네. 금방 꺼지겠지. 에리쨩 핸드폰 울리는데? 괜찮아 지금은-


-깨고 싶지 않으니까. . 지금. . 이겠구나. 꿈은 자각하고 나면 깨진다. 아직 눈은 뜨지 않았지만 에리가 있는 곳은 이제 오토노키가카 고교의 아이돌 연구부 부실이 아닌 자신의 방 침대였다. 눈치 없는 진동소리는 계속 울렸다. 에리는 엎드린 채로 몸을 일으키려다 그대로 다시 풀썩 배게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 싫다. 와중에도 진동소리는 울리고 있었다. 에리는 꾸물꾸물 이불에서 오른손만 꺼내다 침대 위쪽을 더듬거렸다. -- 울리고 있는 핸드폰의 앞면, 알람 끄기가 있을 익숙한 위치를 눌렀다. 하지만 계속 울리는 진동은 점점 커지는 것 같은 착각까지 일으켰다.


대체! 왜 안꺼지는거야!”


결국 폭발해 상체를 훅 일으킨 에리를 맞아준 것은 알람 화면이 아닌 전화 수신 화면, 그리고 화면에 찍힌 니코라는 이름이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미안!’이라고 외친 후 10분 새 에리는 상당히 말끔한 모습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니코의 노성은 당연히 에리가 온전히 감당해야했다.


실컷 화내놓고 이제 와서 차분한 척 해봐도 늦었는데요, 니코니씨.”


핸드백에 지갑을 넣으며 궁시렁거려 봤다가, 에리는 고함소리에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핸드폰을 귀에서 멀찍이 떼어 내야했다.


. 미안해. ... 그러니까... 늦잠을 좀....”


다시 한번 핸드폰이 에리의 귀에서 멀어졌다.


. . 금방 갈테니까.”


핸드폰을 내려놓고 거울을 보며 마지막으로 와이셔츠 깃을 만지고 핸드백을 들어다 어깨에 걸쳤다. 그렇게 바로 밖으로 나서려 움직이던 에리는 다시 뒤로 걸어갔다. 책장 위에 놓여있던 액자가 살짝 삐뚤어져 있어 바로 하고, 아홉명이 모여 학교 강당에서 ‘start dash!’ 공연을 마치고 찍은 기념사진 그 사진 속의 그녀에게 슬쩍 인사를 건넸다.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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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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