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어떨까? 1년이야. 1년만 그렇게 해보자. 1년 전의 이곳에서 리코는 웃으며 요우에게 이야기했다.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 이야기에 이끌려 그렇게 1일째에 손을 끌어 맞잡는 온기를 느껴보기로 했다. 어색하지만 한껏 꾸미고, 또 꾸며낸 것이지만 나름대로 들뜬 마음으로 공원을 향했던 날이 이틀째였다. 거리를 거닐며 나누는 평범한 대화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3일째 되는 날. 포옹을 시도하는 요우의 뻣뻣한 동작에 리코는 웃으며 자신이 먼저 등 뒤로 두 손을 포갰다. 하루 종일 카페에서 둘이 같은 노래를 귀에 담은 것이 아마도 일주일 째 되던 날. 밤공기로 열을 식히며 긴 통화를 나눴던 것은 열흘째였을 것이다. 30일 즈음 되었을까. 그날에는 바다 너머로 해가 지는 것을 함께 보았다. 백일째라고 작은 선물을 주고받은 것은 초여름의 일이었다. 가을의 어느 날에는 함께 일부러 낙엽을 밟으며 바스락 소리를 즐겼다.


그렇게 365일째의 오늘. 다시 봄이다. 분침이 점점 약속 시간으로 다가가는 것을 어떻게 밀어낼 수 있을까. 요우는 아직 못다 한 말을 헤아리고, 또 아직 하지 못한 일들을 헤아리며 리코를 기다렸다. 아직은 봄이라기엔 너무 쌀쌀한 날이었다. 리코는 항상 약속 시간을 늦지도 이르지도 않게 정확히 지켰다. 그러니 이제 곧. 요우는 아직 리코와 단둘이 한 번쯤 도쿄에 가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단 걸 기억했다. 세시. 약속한 시각이었다. 리코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아직 리코에게 아침을 만들어 준 적이 없었다. 아직 제대로 다이빙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직, 아직 올해의 벚꽃을 보지 못했다.


요우쨩.”


세시 십분. 요우는 도착한 리코를 웃으며 맞았다. 괜찮아. 리코쨩도 같은 생각일 거야. 지난 1년간 그랬는걸. 그렇게 믿으며 요우는 지난 몇 분간 자기의 생각을 하나둘 풀어놓았다. 그리고 요우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던 리코는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요우가 입을 꾹 다문 후에야 입을 열었다.


“1년간 정말 좋은 시간이었지.”


리코는 그렇게 운을 떼며 요우가 앉은 벤치의 바로 옆에 털썩 앉았다. 다리를 조금 흔들며 잠시 말을 고르는 사이, 요우는 시선 둘 곳을 찾다 결국 두 사람의 사이에 놓아둔 제 손끝을 향했다.


나 요우쨩 덕분에 정말 행복했어. 정말이야. 그런데 있지 나 그런 생각도 해. 마지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 행복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마지막을 상상하는데, 그리고 걱정하는데, 시간을 쓰지 않을 수 있었잖아? 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돼, 요우쨩.”


그리고 안녕까지는 금방이었다. 혼자 남은 벤치에서 요우는 손끝이 빨개진 두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역시 봄이라기엔 아직 너무 쌀쌀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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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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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ㄷㄱ

    카젠 님 글 잘 읽었습니다. 요우는 아쉬움을 얘기하고, 같은 마음이라면 다시 손잡고, 1년 전 첫날 같은 시작을 바랐을 텐데, 다시 맞잡지 못한 채 둘 사이에 있다가 제 주머니로 들어가는 손이 안타깝네요. 행복하단 말로 붙잡을 수 없게 떠나는 리코도 얄밉지만, 뒤돌아서 눈물 찔끔하는 리코도 제 마음 속 어딘가에 존재합니다. 끝이 정해져 있어서 좋았던 거라는 어려운 말을 하고 있지만, 저 말도 엄청 준비해서 했을 것 같아요. 둘의 감정을 알 수 없어서 더 여러 생각이 드네요. 제목은 봄인데, 마음 쌀쌀하기로는 겨울에 맞먹습니다. 다음 글도 기다릴게요

    2017.02.21 11:18 [ ADDR : EDIT/ DEL : REPLY ]
    • 감사합니다! ㄷㄱ님 말씀대로 리코도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을 것 같고, 결국 요우와는 다른 결론을 내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여러가지로 신경 쓴 부분을 많이 짚어주셔서 남겨주신 감상 읽으며 너무 기뻐서 데굴데굴 굴렀네요ㅜㅜ 다시한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7.02.21 21:06 신고 [ ADDR : EDIT/ DEL ]

짧은 수신음과 함께 켜진 핸드폰의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리코는 읽던 책을 덮어 책장에 집어넣었다. 리코는 곧 의자에서 일어나 잠시 침대에 대충 걸쳐뒀던 외투를 집어 들고 전신 거울 앞에서 입으며 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리고 나서야 핸드폰을 열어 메시지를 읽었다.


<잠시 시간 괜찮아?>


리코는 핸드폰 화면을 끄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언제나와 같이 바닷가에서 만나 잠시 파도 자락을 아슬아슬 걷는다. 항상 앞장서는 쪽은 요우였다. 리코는 그 뒤를 따라 걸으며 요우의 등을 바라보았다. 리코가 자신의 그림자가 요우에게 닿을락 말락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요우가 웃으며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다음은.


"무슨 일 있어?"


언제나와 같이 넌지시 물었다.




와타나베 요우는 사쿠라우치 리코의 앞에서만 운다. 내가 요우에게 특별한 존재구나. 리코는 그것이 기뻤다. 기쁘고, 또 기뻤다. 조금씩 들뜬 기분들은 점점 뭉쳐 모였다. 그리고 묵직하게 리코에게 돌아왔다.

요우는 고개를 숙이고, 훌쩍일 때마다 어깨를 떨었다. 리코는 그런 요우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리코..쨩."


와타나베 요우는 사쿠라우치 리코의 앞에서는 운다. 되돌아온 것은 더이상 기쁨이 아니었다. 맴도는 문장은 정리해내지 못해 혀끝을 넘지 못하고 흩어졌다. 왜. 그 하나만 남아서 리코는 그대로 토해냈다. 왜. 왜. 왜. 그 한마디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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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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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브라이브!2017.01.14 23:01

1. 매일 아침

 

창은 머리맡 왼편에 조금 높이 나 있는 편이었다. 커튼도 쳐있지 않으니 햇살은 쉽게 창을 넘어 이미 작은 방에 한가득이었다. 노조미는 아직도 이불 속에 파묻혀 있는 방 주인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곤 슬쩍 창을 올려보았다. 빛이 내려앉는 사이로 먼지가 희뿌옇게 흐렸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동안, 백귀들이 재잘대는 마냥, 그렇게 저들밖에 없는 양. 노조미는 잠시 표정 없이 하얀 점들이 노니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슬쩍 입꼬리만 올리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에리치, 일어나.”


그 잠시 사이에 소리 없이 일어나있는 상대방의 모습에 순간 노조미의 말문이 막혔다.


났구나.”

..”


잠이 덜 깬 목소리. 아니나 다를까 에리는 상체만 일으킨 채로 침대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씩 내려가는 에리의 고개에 노조미는 쿡쿡 웃으며 그녀의 오른쪽에 걸터앉았다. 그리곤 왼팔을 침대에 디디고 슬쩍 에리 쪽으로 기대오며 말했다.


그래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나?”

..”


이미 에리의 머리는 노조미의 어깨 깨까지 내려와 있었다.


에리치이?”


더 가까이 다가가며 이름을 불러보니 색색 숨소리만 돌아왔다. 이제는 반사적으로 튀어나와 끝이 흐려지던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 더 가까이. 몸을 슬쩍 틀어 아슬아슬, 닿지만 않을 위치에서 에리의 얼굴을 올려보았다. 꼭 닫은 눈꺼풀에 슬쩍 벌어진 입. 아무래도 에리가 저 혼자 일어날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여기선 일단 한 발 물러서는게 좋겠지. 노조미는 여러 번의 경험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살짝 찡그리며 웃어 보이더니 우선은 몸을 뺐다.


에리는 눈은 감고 있었지만 자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조미의 이야기도 전부 듣고 있었다. 최소한 본인은 전부 듣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눈도 몸도 단번에 일어나기에는 너무 무거워서 조금만 천천히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일어나레이, 에리치.”


노조미의 이야기도 다 듣고 있었다. . 일어났어. 재차 대답도 했다고, 에리 자신은 생각했다.


아침 먹어야 하지 않나? 곧 나가야 하고.”


재촉하는 소리는 조금씩 멀어지더니 어느 순간 가로막힌 듯 탁해졌다.


늦으면.”


그렇게 작아지다, 사그라들었다. 그 작아진 소리에 외려 에리의 눈이 뜨였다. 어느새 자신이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었던 것도 에리는 그제야 눈치챈 모양이었다. 이불을 헤집으며 급히 일어나는 에리 때문에 침대가 크게 삐걱거렸다. . . 굴러떨어지듯 침대에서 내려왔지만, 아래층에는 사람이 없으니 큰 발소리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은 급히 방문을 열어젖혔다. 문 바로 앞에는 식탁이 보였다. 노조미는 그 건너편에 앉아 괜히 싱글거리며 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잔뜩 힘이 들어갔던 손이 풀리며 문고리를 놓아주고 팔을 떨어뜨렸다. 그 잠깐 새에 기운이 빠져서는 에리는 터덜터덜 문밖으로 나왔다.


왜 그렇게 사람을 보면서 웃고 있어.”


퉁명스럽게 말을 던지는 에리에게 노조미는 계속 웃는 채로 손가락을 들어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에리치 머리카락이 입에 들어가 있는 거 알고 있나?”

. 노조미!”


에리는 의자를 빼내며 툭툭 입가를 쳐냈다. 그렇게 에리가 머리를 정리하고 나서도 싱글거리는 노조미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식탁에는 이미 빵이 몇 개 들어있는 바구니가 내놓아 있었다. 노조미의 맞은편에 앉은 에리는 빵을 하나 집어 들어 반으로 쪼갰다. 그리곤 한쪽을 입으로 가져가며 다른 한쪽은 다시 바구니에 내려놓았다.


빵이 푸석해.”

불평하지 말레이.”,


네네. 에리는 건성으로 답하며 남은 빵조각을 마저 입안에 밀어 넣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에리가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노조미는 여전히 식탁에 앉아 웃고 있었다. 에리는 쿵쿵 발을 울리며 이 방 저 방을 바쁘게 오가더니 욕실에 들어갈 때쯤이 되어서는 거의 집 안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샤워를 하는지 물소리가 들렸다. 소리와 함께 조금씩 노조미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굳어가던 표정은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깨졌다.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욕실을 나서는 에리와 눈이 마주쳤을 땐 이미 노조미는 다시 웃고 있었다.


***


에리는 한발을 들어 구두의 뒷꿈치를 매만지곤 두어 번 발을 굴러 발을 편히 했다. 그리곤 쭈그려 앉아 남은 한쪽의 신을 신으며 노조미를 올려보았다.


슬슬 나가볼게.”


그런 에리에게 노조미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녀오레이.”

. 다녀올게.”


느릿느릿 현관에서 한참을 인사를 건네고, 문을 열고도 에리는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돌려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노조미는 슬쩍 웃으며 에리에게 이야기해줄 뿐이었다.


기다릴테니께.”


에리는 문을 나서고, 노조미는 안에 남았다. 문이 닫히고, 밖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노조미는 에리를 향해 흔들던 손을 내리고 웃음을 거뒀다. 그 날,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던 이후로 노조미가 에리를 기다리는 것은 두 사람에게 너무나 당연한 매일이 되었다.




2. □□□의 꿈

 

삼 년 전 봄, 내 토죠 노조미는 스쿨아이돌을 시작했데이.

'내까지 넣어서 아홉명인기라.'

삼 년 전 여름, 내 토죠 노조미는 아야세 에리와 교제를 시작했데이.

'실수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거 고백인걸? 대답해주겠어, 노조미?”

그리고 그해 겨울, 나 토죠 노조미는그만 교통사고로 거짓말처럼 죽어버렸다.

 

***

 

이런 기분이구나. 죽은 자신을 인지한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단 차분한 과정이었다. '삶에 미련이 없다.'라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을 일이라는 것을 이렇게 된 순간에 알아버린 쪽에 가까웠다. 이런 시간을 가지게 된 것도 스피리츄얼 파워라고 장난스레 불렀던 그 힘에 도움을 받아, 일종의 보너스 스테이지에 온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도 무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거나 슬픔에 미쳐버릴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나의 장례식에 와있었다.


장례식장은 분주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꽤 많은 편인 것 같았다. 어릴 때의 나를 떠올려보면 힘냈다고 생각해도 괜찮은 것 아닐까. 그런 한가한 생각을 하며 여기저기 구경을 하며 돌아다녔다.


거기 거기. 꽉 잡야한데이. 풀어지잖나?”


들리지는 않겠지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을 붙이고 다녔다. 이렇게 되어서야 할 일도 없으니 있는 건 정말로 시간뿐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돌아다녀도 다른 사람들을 성가시게 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닿는 대로 여기저기를 떠다니다 순간 눈에 스친 모습에 급히 멈추어 몸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것이니 많이 보고 싶었지만,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부모님 쪽으로 갈 수는 없었다. 마침 돌아본 쪽에 뮤즈 멤버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여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후다닥 도망쳐 그쪽으로 날아갔다. 모두의 머리 위에서 손가락을 들어 수를 헤아려 보았다. 하나. . . . 다섯. 여섯. 일곱. 다 같이 식장에 들어올 때 슬쩍 보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한 명이 부족했다. 누가 없는지는 보자마자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니코쨩, 어제 다녀온 건.”

그 녀석 얘기는 하지도 마.”


가까이 가니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리기 시작했다. 누구 얘기인지는 몰라도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니코의 모습에 그 옆에 슬쩍 앉아 얼굴을 붙였다.


너무하네 니콧치. 여 내 하루밖에 없는 날인디 그렇게 인상이나 쓰고. 얼굴 펴레이.”


웃으면서 괜히 손가락을 니코의 눈썹 사이에 가져가서 빙글빙글 돌려보았다. 그러다 니코가 무거운 목소리로 잇는 말에 우뚝 멈추었던 것 같다.


아야세 에리. 그 멍청이는.”


직접 볼 수 없었으니 잘은 몰라도 내 표정도 같이 무서워지지 않았을까.


니코쨩.”

! 맞는 말이잖아. 그 녀석이 지금 여기 없는 게 말이 되냐고!”

니코. 목소리가 너무 큽니다.”


우미의 지적에 니코는 입을 다물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잘모르겠다. 니코의 이야기가 무슨 뜻일까. 에리가 왜 오지 않았을까. 니코는 왜 에리한테 찾아 갔던 걸까. 여러 생각은 모두 밖으로 나가면서 이어졌다.


에리의 집을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앞에 도착해 보니 집에 불이 꺼져있어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다른 곳에 있나? 많이 이르긴 하지만 혹시나 자고 있는 걸까. 자는 모습이라도 보고 나오고 싶을지도. 아니 그러고 보니 일단 마음대로 들어가 봐도 되는 걸까. 아무도 못 보니 다행이었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에 서서 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은 부끄러웠다. 이미 죽어버린 후라고 해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오히려 아무렴 어떤가 싶어져 버렸다.


어차피 보지도 못할 테고 말이여!”


밖에서 본 것처럼 안은 어두웠다. 역시나 인기척도 없는 것 같았다. 역시 에리치는 집에 없는 걸까. 혹시 모르니 여기까지 온 거 확인은 해보자는 생각에 조심스레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슬쩍 기웃거려본 주방이나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에리치의 방문 앞에서 다시 고민이 이어졌다. 여기 있을지도 모르잖아? 에리치의 방에 들어가는 게 실례아니, 이건 에리치가 걱정돼서니까! 이렇게 되었으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도 아주, 아주 아주 조금은 있었다. 결국, 아까보다는 짧은 고민의 시간을 거쳐 에리치의 방문을 넘었다.


실례합니다.”

노조미?”


한구석에 쭈그려 앉아 슬쩍 고개를 드는 에리치는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모습과 많이 달랐다. 그래서 에리치가 내 이름을 부른 것에 놀라는 것도 잊어버렸다.


노조미다.”


에리치는 웃고 있었다.


노조미가 보여.”


자기 무릎을 끌어안고 얼굴만 들어서, 나를 보고 있었다. 에리치가 ''를 보고 있었다. 그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다가가면서 손을 뻗고 있었다. 두 손을 있는 힘껏 뻗어 금방이라도 에리치를 안아줄 수 있을 것처럼. 에리치의 표정이 변한 건 한순간이었다. 뒤에는 벽뿐인데 에리치는 뒤로 물러나려는 듯이 발을 굴렀다. 무서워하고 있어. ? 내 뒤에 뭔가 있나?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슬쩍 뒤를 돌아봤지만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봤을 때에야 나와 에리치의 시선이 조금 엇나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에리치의 시선은 조금 낮았다. 따라갔을 때, 공중에 떠 있는 내 맨발이 있어서, 그제야 새삼 알았다. 아차차. 나는 지금 여기 있을 수 없는 사람이구나.


미안하데이.”


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웃었다. 물러날 곳도 없이 도망치려 하는 에리치 대신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 줬다.


, 에리치한테는, 정말, 정말로 미안하데이.”


가는 게 좋겠지. 조금이라도 빠르게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쪽이 좋을 것 같아 바로 돌아섰다. 어서, 도망가자. 천장에 이마가 닿았을 때 즈음이었을까.


노조미!”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는 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에리치는 일어서 두 팔을 하늘로 자기 머리 위로 뻗고 있었다. 겁을 내는 그 표정 그대로, 필사적으로 내게 손을 내밀어 주고 있었다.


에리치가 나를 보며 무서워하는 표정을 짓지 않게 되기까지 3일이 걸렸다. 에리치가 내게 말을 걸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에리치의 옆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불안해하는 표정을 짓지 않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내가 에리치에게 손을 뻗었기 때문에. 또 에리치가 나에게 손을 뻗었기 때문에. 그렇게 다음날이 되면 깨야 할 꿈이 삼 년째 계속되고 있다.

 





3. 어느 주말

 

여느 때의 주말보단 조금 이른 기상. 이 방 저 방을 오가며 분주한 준비. 그녀에게 약속이 있다는 것이야 누구든 조금만 지켜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상대가 니코라는 것도 언제나 에리의 옆에 붙어있는 노조미에겐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에리치, 니 오늘 니콧치 만나러 가는거 아니가?”

아니.”

아니이?”


노조미가 말꼬리를 늘이며 에리의 말을 반복해 물어오자 자연스럽게 에리의 고개가 그녀의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노조미는 이미 전날 에리와 니코가 문자를 주고받는 것을 바로 옆에 붙어서 보고 있었다. 당연히 눈을 돌리며 노조미의 시선을 피해 보았자 소용이 없었다. 이 이상 거짓말을 하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에리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시인했다.


아니. 그래. 맞아.”

뭘 숨기려고 그러나? 거기 내도-!”

기각!”


에리는 노조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손을 들어 보이며 노조미의 말을 막아섰다. 그리고 노조미도 이에 질세라 에리의 손 옆으로 얼굴을 비집고 들어오며 맞섰다.


!”


그런 노조미에게 에리는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어왔다.


왜냐니. 기억 안 나는 거야? 호노카와 만났을 때?”

 

***


노조미, 얘기했던 건 기억하고 있는 거지?”

네네! 잘 기억하고 있데이.”


약속장소의 옆, 건물과 건물 사이 작은 공간에서 에리는 노조미를 노려보고 있었다. 몇 번이나 주의를 주고,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잔뜩 들떠서 주변을 에리를 보지 않고 밖을 기웃거리며 건성으로 대답을 하는 노조미에게 크게 신뢰가 가질 않았다.


절대, 절대로 조심하는 거야.”


그리고도 노조미에게 두어 번을 더 확인을 받고 나서야 두 사람은 호노카가 기다리고 있는 카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에리쨩! 여기여기!”

호노카쨩!”


그리고 에리는 호노카를 만나자마자 얼굴을 감싸 쥐어버리게 되었다. 호노카와의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노조미가 에리에게 같이 가고 싶단 이야기를 해왔다. 에리는 한참을 고민하다 호노카를 보고 싶어하는 노조미를 이해해주기로 했다. 혹시 모를 일이 있을까 걱정이 되어 몇 번이나 노조미에게 밖에선 조심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멀찍이서 손을 흔들고 있는 호노카의 얼굴을 보자마자, 에리의 옆에 있던 노조미는 날아서 호노카의 얼굴에 매달려 버렸다. 안되지, 안되지. 에리는 속으로 스스로를 달래며, 이대로 가만히 서있으면 호노카가 이상하게 생각할 거란 생각에 일단은 비척비척 호노카쪽으로 갔다.


에리쨩? 어디 안 좋아?”

아니. 아니야.”


노조미는 뭐가 그리 좋은지 호노카의 옆에서 싱글벙글이었다. 슬쩍 그쪽을 노려보다 또 되었다 싶어져 우선 호노카를 보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것으로 끝이라면 에리도 더 따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만에 본 뮤즈 멤버였다. 그녀를 배려해줄 여유가 자신에게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 한 번 정도야 미안한 마음과 함께, 조금 많이 들뜬 노조미를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었다. 그 한 번으로 끝이었다면. 에리에겐 몹시 힘든 시간이었다. 호노카와 마주 보고 대화하는 내내 노조미는 호노카의 옆에서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따라 하기도 했고, 호노카와 에리의 사이에 끼어들기도 했다. 웃음을 참느라 에리의 표정이 꿈틀거릴 때마다 호노카의 표정도 함께 의아하게 바뀌었다. 결국, 노조미가 호노카의 머리카락 사이로 슥 얼굴을 내밀었을 때는 참지 못하고 폭소가 터져버리기도 했다.


에리쨩, 안 좋은 곳이 있으면 병원에 가보는 쪽이 좋아.”


인사 끝에 묘한 표정을 지으며 호노카가 걱정스럽게 덧붙였을 때는 정말로 심란해져 버렸다.

 

***

 

에리는 고개를 슬쩍 돌리는 노조미에게 얼굴을 드밀며 한 번 더 강하게 물어보았다.


기억 안 나는 거야, 노조미?”

.”

 

***

 

결국 에리는 끝까지 매달리는 노조미를 떨쳐내고 혼자 카페에 도착했다. 오래 찾지 않아도 니코는 금방 눈에 띄었다. 두 사람을 위한 것 같은 의자의 한가운데에 등을 기대고 앉아 빨대를 입에 물고 있는 그녀는,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이해할 수는 있지만 말이지.”


에리는 입구에 서서 슬쩍 굳었던 표정을 풀며 웃었다. 그리곤 일부러 맞은 편이 아닌 뒤쪽으로 슬그머니 다가가, 니코의 옆에 앉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우주 넘버원 아이돌 니코니인가요?”


옆쪽에서 어깨가 쭈뼛 서는 것이 느껴졌다. 성공이네. 니코는 슬쩍 몸을 빼며 고개를 돌렸다. 웃고 있는 에리와 대조적으로 입꼬리가 내려가 있었다.


놀랐잖아.”


니코는 퉁명스럽게 이야기를 하며 한 손으로 슬쩍 선글라스를 내렸다. 미간에 자연스럽게 주름이 자리를 잡고 눈을 무섭게 뜬 것이 언제나의 니코와 같다고 에리는 생각해버렸다에리가 곁눈질로 슬쩍 테이블을 보니 니코가 시킨 음료는 아이스초코로 보였다.


그러고 보니 에리, 근처에 홍보는 잘하고 있는 거지?”

하하하.”


에리는 시선을 피했다.


주문하고 올게. 나도 아이스초코가 먹고 싶어졌어.”


일어나는 에리의 등에 니코의 시선이 꽂혔다.


에리 잠깐만. 옷 뒤에.”

?”


니코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까치발을 들어 에리의 상의 뒤쪽에 달려있던 태그를 떼어주었다.


제대로 확인하라고. 새 옷인가 보네.”

, . 그러고 보니 사고 입었던 적이 없었네. 니코 앞에서 개시하게 됐는걸.”

흐응. 제법 잘 샀잖아.”

그치? 살 때 노조미도-”

?”


아차, 싶었다. 명백한 실수였다.


에리 너 설마 아직도-”


니코의 눈이 무서워져 버렸다. 에리가 노조미와 헤어지고 노조미와 다시 만나기까지의 사이의 시간에 몇 번씩이나 찾아왔던 니코였다. 닫혀있던 문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와 에리를 끄집어내려고 가장 노력했던 것도 니코였다.


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고. 깐만. 일단 갔다올게.”


에리는 니코의 시선에서 도망쳐버렸다. 다짜고짜 일단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뭐라고 이야기하는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채로 기계적으로 읊으면서 머리 속으로는 계속 생각 중이었다. 주문을 하고도 일부러 음료가 나올 때까지 그 옆에서 기다려, 받아 들고 나서야 자리로 돌아왔다.


그래서 노조미 얘기는 뭔데?”


그 정도 시간을 끌었다고 호락호락 넘어가 줄 니코가 아니었다. 에리가 유리잔이 있는 쟁반을 테이블에 올려놓자마자 다시 쏘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냥, 노조미도 이런 옷 좋아했으니까.”


카운터 옆에서 내내 머리 속으로 읊었던 대사를 그대로 늘어놓았다. 니코는 그런 에리를 빤히 추궁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에리쪽에서 가만히 마주 보니 이내 툭 던지듯 말을 내놓았다.


아아, . 그래.”


하아. 옆에 있던 쿠션을 끌어안으며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냥 그 정도 변명으로 넘어가 주겠다는 태도가 명백했다.


***

 

다녀왔어.”


에리의 힘이 빠진 인사에도 노조미는 곧장 다가왔다. 그리곤 쉴 새 없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어땠어? 니콧치는 여전하나?”


에리는 응응, 건성으로 답하며 곧장 제 방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노조미는 계속 에리를 따라가며 이것저것 물어왔다.


사진 찍은 건 없나? 티비로 보긴혀도 그, 니콧치니까 말여.”

지쳤어

에리치? 에리치?”


노조미는 곧장 침대에 쓰러지는 에리를 계속 불러보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4. □□□의 산책

 

고양이씨, 고양이씨, 들어보레이.”


한낮이라도 덥지는 않으니 담에 앉아 옆에서 볕을 즐기고 있는 고양이씨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두 발은 번갈아가며 휘휘 허공을 차고 있었다. 고양이씨는 명백히 한 귀로 말을 흘리고 있는 표정으로 엎드려 귀 한쪽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시험 기간이란 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레이.”


에리치가 몇 번을 불러도 응응, 건성으로만 대답하더니, ‘자꾸 그럼 확 나가버린데이!’하는데도 .’이라고 대답해버리는 바람에 홧김에 집에서 나와버렸다. 조금 움직이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고 있으니 작은 그늘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씨가 보여 멈추었다.


너무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고양이씨는 하품을 하는가 싶더니 몸을 일으켜 움직였다. 너무 시끄러웠을까. 일단은 멀어지는 꼬리에 대고 인사를 건네보았다.


들어줘서 고맙데이.”

 

***

 

종종 외출은 한다지만 혼자 거리에 나서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어딜 갈까 하고 정해둔 곳은 없었다. 고양이씨를 보내며 담벼락 위를 걸어 그 뒤를 조금 따라갔다. 그러다 고양이씨가 훌쩍 뛰어 담을 내려갈 때 옆에 나비 한 마리가 지나 이번에는 그 뒤를 따라 보았다.


얼마나 움직였더라. 정확한 시간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상가 쪽 까지 나와버린 모양이었다. 옆에는 얼마 전 에리와 함께 나왔을 때 보았던 건물이었다. 그때는 한참 공사 중이던가 싶더니 거의 마무리가 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직 문은 열기 전, 커다란 유리창 한 면은 전부 검은 천에 가려 날짜 하나만 쓰여있었다. 그 덕에 가만히 들여보고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아이들 몇이 밑으로 우르르 지나갔다. 하나는 모자를 쓰고 가장 크고 제일 앞장서서 달려가는 것이 대장 같은 폼이었고, 그 뒤로 고만고만 전부 다 뭐라고 소리를 질러대며 그 뒤를 쫓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으니 내 옆으로 누구 하나가 잠시 멈추어서 머리를 매만지고 가기도 했다. 그러다 얼핏 눈에 익은 얼굴이 앞으로 스쳐 지나가 홱 고개를 돌려보니 고등학교 때 보았던 모습이 남아있었다. 잘 지내고 있구나. 그 길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유리 안에 그 많은 모습들이 있는데, 거기 나는 없었다.


나는 나를 에리치를 통해서 보아왔다. 이제 스물둘. 에리치의 모습은 조금씩 변했다. 화장을 하기 시작하고, 옷차림이 자리에 맞게 변하고 표정이, 말투가 아주 조금씩이라지만, 변했다.


그리고 열어덟. 나는 변하지 않는다.

 

***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에리치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불렀단 것에 착각인가 싶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길에 다른 사람이 하나도 없어 그제야 깜짝 놀라버렸다. 그리고 다시 돌아봐 찬찬히 날 부른 사람을 보니, 어릴 적에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내가 보이나.’


이렇게 되어버리기 전에. 뮤즈를 만나기도 전에. 에리치를 만나기 그 이전에. 혼자였을 무렵에, 아저씨를 만난 적이 있었다. 전부 까만 모습에 까마귀 아저씨라고 혼자 기억에 담았다. 아저씨는 날 가만히 바라보더니 작게 한숨을 쉬곤 말했다.


너는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이미 선택했어요.”


나는 웃었다.






5. 그날 밤

 

노조미!”


술 냄새를 맡을 수는 없었지만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귀가가 늦어진다 싶더니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에리는 술에 만취해있었다. 집은 혼자 어떻게 찾아온 것인지 모를 정도였다. 문을 잡은 채로 꿈지락꿈지락 신발을 벗는 와중에도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그때마다 노조미는 움찔움찔 반사적으로 몸이 튀어 나갈 뻔하며 에리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에리는 허리를 똑바로 펴질 못하고 얼굴은 잔뜩 붉어진 채로 슬쩍 노조미를 올려보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배시시 눈을 휘며 웃어 보인다.


에리.”


그러다 결국은 현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집 안쪽으로 엎드려버렸다. 노조미는 그렇게 길게 엎으려 누워버린 에리의 옆에 쭈그려 앉아 귓가에 대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에리치.”


대답은 없었다. 괜히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시늉을 해보았다.


술이 그렇게 좋나?”


아무 반응이 없던 에리가 노조미의 물음에 갑자기 몸을 반대로 뒤집으며 답을 해왔다.


그러엄.”

에리치 니.”

노조미.”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끌어안으려는 양 두 팔을 뻗어왔다. 붉어진 얼굴로 웃는 에리의 모습은 어딘지 어린아이 같았다. 에리는 계속 현관에 발을 둔 채로 누워 두 눈을 감고 웅얼거리듯 말했다.


노조미. 노조미. 노조미.”

듣고있데이.”

있지 노조미.”

~?”

네가 죽는 꿈을 꿨어.”

.”


에리는 이내 바닥을 짚으며 상체만 일으켜 노조미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노조미. 키스해도 될까?”


노조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에리는 천천히 다가가 노조미의 입술이 있을 곳에 입을 맞췄다. 손을 뻗어 노조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노조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손이 조금씩 내려가 뺨을 스치고 어깨 즈음에서 떨어졌다.


에리는 안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에리치.”

.”

사랑해.”

.”

죽을만큼.”


숨을 삼켰다.


.”

 

***


노조미는 그렇게 어물쩍 늦게 귀가한 연인을 쉽게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에리치, 니 그거 아나?”


노조미의 목소리와 표정만으로도 무슨 말이 이어질지 에리는 어렴풋이 예상한 모양이었다. 바로 표정이 굳어지더니 에리는 일단 제 귀를 막고 보았다.


하지마. 노조미.”


딱딱히 굳은 목소리로 경고해 보았지만 능글맞게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노조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느 나갔던 사이에 잠깐 방에 누가 놀러 왔던 것 같든데

아아아아아아.”

아직 남아있는건 아닌가 모르겠데이.”

노조미!”


귀를 막은 효과는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딱 에리치 앉은 그 옆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여. 허이야. 에리치, ! 옆에!”


밤 중에 때아닌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

 

고맙네요. 덕분에 술은 다 깼어.”


실제로 침대 위에서 베개를 끌어안고 있는 에리는 현관에 있을 때보다 정신이 맑아 진 것 같아 보였다. 생각보다 더 많이 놀랐는지 삐진 모습이 꽤나 오래가고 있었다. 퉁명스레 툴툴대는 에리의 모습에 노조미는 머쓱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근디 따지고 보면 내도 그런 긴데 말여.”


말꼬리를 흐리다 퍼뜩 표정이 바뀌어 두 손을 흔들었다.


미안타. 어쩔 수 없는 건데. 쓸데없는 말을 했네.”


에리는 노조미를 가만히 바라보다 안고 있던 베개를 옆에 내려두고 손짓을 하며 그녀를 불렀다


잠깐 이쪽으로 와주겠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노조미는 순순히 에리쪽으로 다가갔다.


그거 알아, 노조미?”


에리가 한쪽에 미뤄져 있던 이불을 잡고 두 사람의 머리 위로 크게 에둘러 덮었다. 작은 동굴을 만들어, 어린아이들의 비밀기지 같은 모양이 되었다. 두 사람은 그 안에서 이마를 맞대고 마주했다. 에리는 두 손으로 위를 받쳐 공간을 만든 채로 노조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치고, 한음한음 또박또박 그녀에게 전했다.


노조미는 언제나 빛이 나고 있어.”


어두운 이불 아래에서 에리는 노조미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빛은 새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새어 나가고 있었다. 노조미의 빛은 그녀를 은은하게 감싸고 있었다. 노조미는 에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아왔다. 그리고 에리 또한 그동안 노조미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봐왔다. 에리는 그것을 노조미에게 전했다.


에리의 눈동자를 통해 노조미 자신이 보였다.


긴 꿈일지 모른다. 그때의 그 순간에 멈추어서 '노조미'라고 불리던 그림자가 꾸는 꿈. 깨기 싫어 억지로 이어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두 사람은 내일도 계속될 꿈에 기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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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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