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은 머리맡 왼편에 조금 높이 나 있는 편이었다. 커튼도 쳐있지 않으니 햇살은 쉽게 창을 넘어 이미 작은 방에 한가득이었다. 노조미는 아직도 이불 속에 파묻혀 있는 방 주인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곤 슬쩍 창을 올려보았다. 빛이 내려앉는 사이로 먼지가 희뿌옇게 흐렸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동안, 백귀들이 재잘대는 마냥, 그렇게 저들 밖에 없는 양. 노조미는 잠시 표정 없이 하얀 점들이 노니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슬쩍 입꼬리만 올리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에리치, 일어나….”
그 잠시 사이에 소리 없이 일어나있는 상대방의 모습에 순간 노조미의 말문이 막혔다.
"났구나.”
“….응.”
잠이 덜 깬 목소리. 아니나 다를까 에리는 상체만 일으킨 채로 침대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씩 내려가는 에리의 고개에 노조미는 쿡쿡 웃으며 그녀의 오른쪽에 걸터앉았다. 그리곤 왼팔을 침대에 디디고 슬쩍 에리 쪽으로 기대오며 말했다.
“그래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나?”
“….응.”
이미 에리의 머리는 노조미의 어깨 께까지 내려와 있었다.
“에리치이?”
더 가까이 다가가며 이름을 불러보니 색색 숨소리만 돌아왔다. 이제는 반사적으로 튀어나와 끝이 흐려지던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 더 가까이. 몸을 슬쩍 틀어 아슬아슬, 닿지만 않을 위치에서 에리의 얼굴을 올려보았다. 꼭 닫은 눈꺼풀에 슬쩍 벌어진 입. 아무래도 에리가 저 혼자 일어날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여기선 일단 한 발 물러서는게 좋겠지. 노조미는 여러 번의 경험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살짝 찡그리며 웃어 보이더니 우선은 몸을 뺐다.
에리는 눈은 감고 있었지만 자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조미의 이야기도 전부 듣고 있었다. 최소한 본인은 전부 듣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눈도 몸도 단번에 일어나기에는 너무 무거워서 조금만 천천히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일어나레이, 에리치."
노조미의 이야기도 다 듣고 있었다. 응. 일어났어. 재차 대답도 했다고, 에리 자신은 생각했다.
"아침 먹어야하지 않나? 곧 나가야하고.”
재촉하는 소리는 조금씩 멀어지더니 어느 순간 가로막힌 듯 탁해졌다.
“늦으면….”
그렇게 작아지다, 사그라들었다. 그 작아진 소리에 외려 에리의 눈이 뜨였다. 어느새 자신이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었던 것도 에리는 그제야 눈치챈 모양이었다. 이불을 헤집으며 급히 일어나는 에리 때문에 침대가 크게 삐걱거렸다. 쿵. 쿵. 굴러 떨어지듯 침대에서 내려왔지만 아래층에는 사람이 없으니 큰 발소리에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일단은 급히 방 문을 열어젖혔다. 문 바로 앞에는 식탁이 보였다. 노조미는 그 건너편에 앉아 괜히 싱글거리며 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잔뜩 힘이 들어갔던 손이 풀리며 문고리를 놓아주고 팔을 떨어뜨렸다. 그 잠깐 새에 기운이 빠져서는 에리는 터덜터덜 문밖으로 나왔다.
“왜 그렇게 사람을 보면서 웃고 있어.”
퉁명스럽게 말을 던지는 에리에게 노조미는 계속 웃는 채로 손가락을 들어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에리치 머리카락이 입에 들어가 있는 거 알고 있나?”
“으…. 노조미!”
[중략]
2. ㅁㅁㅁ의 꿈
삼년전 봄, 내 토죠 노조미는 스쿨 아이돌을 시작했데이.
'내까지 넣어서 아홉명인기라.'
삼년전 여름, 내 토죠 노조미는 아야세 에리와 교제를 시작했데이.
'실수한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거 고백인걸? 대답해주겠어, 노조미?"
그리고 그 해 겨울, 나 토죠 노조미는… 그만 교통사고로 거짓말처럼 죽어버렸다.
***
이런 기분이구나. 죽은 자신을 인지한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 보단 차분한 과정이었다. '삶에 미련이 없다.'라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을 일이라는 것을 이렇게 된 순간에 알아버린 쪽에 가까웠다. 이런 시간을 가지게 된 것도 스피리츄얼 파워라고 장난스레 불렀던 그 힘에 도움을 받아, 일종의 보너스 스테이지에 온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도 무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거나 슬픔에 미쳐버릴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나의 장례식에 와있었다.
장례식장은 분주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꽤 많은 편인 것 같았다. 어릴 때의 나를 떠올려보면 힘냈다고 생각해도 괜찮은 것 아닐까. 그런 한가한 생각을 하며 여기저기 구경을 하며 돌아다녔다.
"거기거기. 꽉 잡야한데이. 풀어지잖나?"
들리지는 않겠지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을 붙이고 다녔다. 이렇게 되어서야 할 일도 없으니 있는건 정말로 시간 뿐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마음껏 돌아다녀도 다른 사람들을 성가시게 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닿는대로 여기저기를 떠다니다 순간 눈에 스친 모습에 급히 멈추어 몸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것이니 많이 보고 싶었지만,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부모님 쪽으로 갈 수는 없었다. 마침 돌아본 쪽에 뮤즈 멤버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여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후다닥 도망쳐 그 쪽으로 날아갔다. 모두의 머리 위에서 손가락을 들어 수를 헤아려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다같이 식장에 들어올 때 슬쩍 보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한명이 부족했다. 누가 없는지는 보자마자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니코쨩, 어제 다녀온건….”
"그 녀석 얘기는 하지도 마."
가까이 가니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리기 시작했다. 누구 얘기인지는 몰라도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니코의 모습에 그 옆에 슬쩍 앉아 얼굴을 붙였다.
"너무하네 니콧치. 여 내 하루밖에 없는 날인디 그렇게 인상이나 쓰고. 얼굴 펴레이."
웃으면서 괜히 손가락을 니코의 눈썹 사이에 가져가서 빙글빙글 돌려보았다. 그러다 니코가 무거운 목소리로 잇는 말에 우뚝 멈추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