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뱅가드2014. 6. 7. 00:32
드문드문 잡초만 비집고 자란 빈터 가득 검은 갑주의 이름없는 이들이 서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정리하다 보니 새삼 제 머리 위의 하늘이 타르투의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의 익숙한 클레이의 하늘이 아니었다. 검붉은 하늘에 커다란 검은색의 고리, 그것이 천천히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타트루는 이내 아무 말 없이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한 사람이 담겼다.


 모드레드는 제 앞에 선 이들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누구 하나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그에게 시선을 집중한 채 입을 꾹 다물고 그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드레드는 짧게 숨을 들이켜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너희는 나와 함께하라.

기억이 목을 막았다. 그들이 그날과 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절망하라.

숨이 새어나올 뿐 아무런 이야기도 전할 수 없었다. 길어진 침묵은 그대로 무게가 되어 모두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몇몇이 곤란하다는 생각에 표정이 흐트러지기 시작할 때였다.

 "보상은 없을 것이다."

날카롭게 모두의 귀를 파고드는 목소리가 흐트러지던 전열을 붙들었다. 모든 시선은 일제히 모드레드의 뒤로 쏠렸다. 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블래스터 다크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명예도 주어지지 않을지 모른다."

잠시 말을 멈추고 블래스터 다크는 자신의 앞에 선 섀도우 팰러딘을 응시했다. 그리곤 제 옆에 선 모드레드의 어깨에 제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다만 우리는 이길 것이다."

반응은 천천히 끓어올랐다. 한 사람의 박수 소리에서 부터 시작해, 커다란 함성이 되어 서로의 귀를 울렸다. 루케아와 라키아는 휘파람을 불어대고, 타르투는 자신의 목표를 다시 한 번 제 눈에 새겼다. 그 와중에도 가만히 미소만 짓고 있는 블러드 마스터도, 서로의 손을 맞추는 쌍둥이 형제도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리벤져의 이름을 새겼다.



 "이번에는 서서 졸기라도 한 건가?"

함성의 뒤에 혼자 숲의 안쪽으로 들어간 모드래드를 블래스터 다크가 따라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커다란 나무의 아래 기대어 앉아 있는 모드레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무 그림자에 가려 모드레드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대답이 없자 울컥 치미는 기분에 블래스터 다크는 한발 다가서며 모드래드의 가슴 부근을 움켜쥐었다.

 "우리는 공범이다! 혼자서 도망치지 마라!"

블래스터 다크는 이를 악물고 머리를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으르렁거렸다.

 "한순간도 과거에 삼켜지지 말란 말이다."

모두 뱉어내고 나서야 블래스터 다크는 모드레드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기사는 그림자 밑에서 웃고 있었다.

 "오늘따라… 말이 많군그래."

느긋한 모드레드의 어투에 블래스터 다크는 밀치듯 손을 놓아주며 퉁명스레 답했다.

 "잠은 깬 모양이지? 일어나라. 출발이다."

블래스터 다크는 여전히 앉아있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모드레드는 잠시 그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는가 싶더니 맞잡으며 그에 의지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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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