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러브라이브!2014. 12. 27. 23:58

주제 : 낙인


팔목이 점점 아려왔다. 우미는 제 손목을 쥔 채로 점점 다가오는 에리의 이마를 남은 한 손으로 힘껏 밀어내 보았지만, 그녀에겐 방해조차 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잠시만. 잠시만요, 에리.”
“싫어.”
다급하게 외쳐보았지만 짧게 대답을 던지고는 그만이었다. 슬쩍 자신의 쪽으로 손목을 잡아당기는 에리의 힘에 못 이겨 온몸이 그녀에게로 쏠려버렸다. 그대로 안겨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한발 휘청거리더니 간신히 균형을 잡아 자리에 섰다. 그 사이 에리는 놀고 있던 한 손으로 우미의 팔꿈치 근처를 그러쥐었다. 옷이 잔뜩 주름지는 모양에 저도 모르게 ‘셔츠. 구겨지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세 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휘저었다.
“에리!”
이번에는 대꾸마저 없었다. 그저 제 할 일에 열중이었다. 에리는 입을 살짝 벌리는가 싶더니 고개를 숙이며 제 얼굴을 우미의 손목에 가까이 가져갔다. 숨이 차게 느껴졌다. 이빨이 피부에 닿는 느낌에 반사적으로 팔을 움츠리려 했으나 속박당한 채로는 부르르 떠는 것이 전부였다. 눈을 질끈 감았다. 붙잡히지 않은 쪽의 손은 에리의 어깨를 계속 밀어보지만, 그저 놓여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뻣뻣한 채로 굳어버리는 듯했다.

순간인 것 같으면서도 길었다.

손목이 풀려나는 것과 우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털석 내 던져진 팔, 손목을 타고 빨간 핏줄기 하나가 흘러내렸다.
“괜찮아?”
평소와 같은 상냥한 목소리와 상냥한 눈웃음으로 에리는 말을 걸어왔다. 동시에 흘러내린 우미의 머리칼을 정리해 주려 그녀의 이마 쪽으로 손을 뻗었다. 어깨를 움츠리며 뒤로 몸을 빼는 우미의 반응에,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을 멈추는가 싶었지만 이내 그대로 그녀를 제 품에 폭 안으며 이야기했다.
“괜찮아.”



Posted by 혼우
글/러브라이브!2014. 12. 26. 00:58

왜 하필 이런 날에 엘리베이터는 고장일까. 불평을 속으로 삼키며 마키는 마지막 계단을 올랐다. 어디부터 문제였을까 돌이켜보자니 단출한 차림으로 현관문을 나서기 직전이었다. 옆에 걸려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다 괜히 마음이 동했다. 화장대 앞으로 돌아가 머리를 다시 매만지고 화장을 고쳤다. 다시 현관 앞에 서서 꺼내두었던 편한 단화를 잠시 내려보다 한발 물러나 신발장에 도로 넣어두곤, 조금이지만 굽이 있는 아껴두었던 새 구두를 꺼내 들었다. 그렇게 집을 나서니 마키는 괜히 살랑거리는 기분이 되어 유난히 더운 날씨도 별로 신경이 쓰이질 않았다. 길이 들지 않은 신을 신고 틈이 꽤나 넓은 보도블록을 가로질러 걷자니 평소보다 뒤뚱거리는 걸음이 되어버렸다. 평소와 다르게 마키는 양손으로 균형을 맞추며 한 발 한 발 조심히 걸음을 옮겼다. 린이 보면 분명 웃어버릴 거야. 그 생각에 도리어 자신이 웃어버렸다.

왠지 모르게 유독 들떠 이유 없이 콧노래라도 흥얼거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혼자 살아남아 열심히 위아래를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앞에 몰린 인파를 보기 전까지였지만 말이다. 가운데 덩그러니 딱 하나 운행 중인 엘리베이터 이외에 옆으로 잔뜩 '점검중'이라는 팻말들이 눈에 띄었다. 웅성거리는 인파로부터 한 걸음 뒤로 떨어져서 마키는 잠시 고민했다. 기다리자면 기다리지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들뜬 그 기분이 문제였다. 뭐, 괜찮겠지. 가볍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마키는 돌아서 계단 쪽으로 향했다.

계단 끝자락에 멈춰 서서는 숨을 고르고 핸드백에서 작은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훔쳤다. 한층 한층 오르며 후회를 거듭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돌아가자니 어쩐지 오기가 발목을 붙들었다. 결국은 그렇게 목적지. 도착했으니 되었다고 여기며 걸음을 옮기며 가볍게 머리칼을 정리했다.

“오늘도 719호?”
“네.”

곧장 걸어가다 보니 앉아있던 간호사분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자주 보는 얼굴이니 살갑게 인사를 붙여오는 것도 익숙한 일이었다. 평소와 같았다면 그대로 꾸벅 인사를 하고 바로 병실로 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녀의 이야기에 마키는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오늘은 누가 먼저 와있더라고.”
“누가 먼저 와있다고요?”

니코? 호노카?

“응응. 몇 번인가 왔던 여자애였는데. 이렇게 단발머리에.”

자기 머리카락을 한 움큼 쥐어다 감춰 보이며 이야기해주는 그녀의 설명에 마키는 금방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제 병실로 향하면 될 일이었다. 막 계단을 올랐을 때보다 더 무거워진 다리를 억지로 한발 끌어다 놓더니 마키는 괜히 그녀를 돌아보며 한마디를 더 던졌다.

“그 애, 온지 얼마나 된지 알아요?”
“글쎄…. 한 10분 쯤 됐나? 얼마 안 지났어.”

최악이다.

“감사합니다.”

719. 슬쩍 고개를 올려 다시 병실 번호를 확인하고 문고리를 내려본다. 그리고 괜히 다시 고개를 올려 번호를 확인해보았다. 마키는 문고리를 손에 쥔 채로 멈춰서 있었다. 다시 확인한 병실번호는 당연하게도 여전히 719를 가리키고 있었다. 문고리를 조금만 돌리려 해도, 안쪽에서 두런두런 들려오는 목소리가 귀에 박혀 몸이 굳는다. 카요쨩은. 결국 마키는 문고리에서 손을 놓고 조금 저릿한 느낌에 허공에 주먹을 쥐었다 폈다. 몸을 돌려 벽에 기대서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린쨩! 문틈으로 목소리는 계속 새어 들려왔다. 그치만 마키쨩이 그랬다냐.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린.”

자신을 변명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린의 이야기에 마키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허탈하게 웃었다.
-마키쨩, 좋아해.
언젠가 들었던 목소리가 떠올라 마키는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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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혼우
글/러브라이브!2014. 12. 25. 01:19

“그런 일이었어. 별로 우미가 걱정할 만한 건-우미?”
“아…. 죄송해요. 뭐라고 하셨죠?”

한참 이야기를 하던 중에 옆에 따라오던 기척이 사라져 돌아보니, 두어 걸음 떨어져 멈추어 서 있는 우미의 모습이 보였다. 에리의 부름에 우미는 바로 다시 에리의 옆에 섰지만 정작 에리는 대답 없이 뚱한 표정으로 우미를 빤히 보고 있기만 했다.

“에리?”

마주 올려보려니 에리의 너머로 가로등이 환해 우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우미에게 에리는 대답 대신 손을 뻗었다. 살짝 얼어있던 볼에 무뎠던 감각이 빠르게 돌아왔다. 동시에 눈을 크게 뜨며 반사적으로 뒤로 피하려는 우미를 예상이라도 한 듯이 에리는 한 손으로는 어깨를 붙들었다.

“벌써 세 번째잖아. 혹시 감기 기운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아뇨, 저.”

똑바로 마주해오는 시선을 아래로 피하며 우미는 어딘지 불안한 듯 말꼬리를 흘렸다. 한 발을 앞으로 그리고 뒤로. 꼭 벌을 받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에리의 눈은 더 매섭게 우미를 쏘아 보았다.

“그게. 저. 아니-“

계속 더듬더듬 말 하나하나가 제 자리를 못 찾아가던 중에 때마침 우미의 주머니에서 울리는 소리가 그녀를 구원했다. 그리고 동시에 우미의 표정이 환해졌다. 두사람 사이를 가로질러 퍼지는 소리는 알림소리. 정직한 기본 벨소리에 합숙 당시에 에리도 들어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이미 어두워질대로 어두워진 시각이었다. ‘왜 지금?’이라는 의문이 에리의 표정에 떠오름과 동시에 우미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낮게 울리는 알림소리를 끄곤 에리를 똑바로 올려보며 이야기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에리.”
“응?”

갑자기 다른 이야기가 되어 무슨 말인지 에리는 바로 받아들이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런 에리에게 우미는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에리를 향하게 하여 보여주었다. 화면에 보이는 시각은 12:00. 그리고 12월 25일, 성탄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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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혼우